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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터넷이기 때문에 마치 원래부터 우리 곁에 존재해 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초창기에는 과학자와 학자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이 기술이 오늘날에는 누구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보급되었지요. 1950년대에 시작되어 수십 년에 걸쳐 진화해온 인터넷의 역사를 이 글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은 우리에게 스마트 기기, 소셜 미디어, 전자 상거래 및 암호 화폐의 시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메신저를 사용하고, 택시를 부르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사진을 공유합니다.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면 우리의 업무도 여가생활도 모두 중단되어 버리지요. 이제 여행지 호텔을 예약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와이파이 속도일 정도로 온라인 접속은 우리의 삶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부분이 되었고, 인터넷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현대인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의 시대의 사람들이 겪었을 불편함에 대해 농담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가 생각했으며, 어떻게 전 세계에 확산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래 글에서 인터넷이 가능하게 한 모든 놀라운 발전과 혁신에 대해 읽어 보세요. 오늘날 거대한 슈퍼 컴퓨터에서부터 손바닥보다 크지 않은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장치를 막론하고 사용되는 인터넷의 모든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넷이란 무엇인가요?

인터넷이란 우리가 정보를 소통하고 공유하는 데 사용하는 상호 연결된 컴퓨터 및 기타 장치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입니다. 인터넷은 기업, 정부, 교육 기관, 개인이 운영하는 수많은 소규모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케이블, 위성 링크 및 무선 연결로 구성된 물리적 인프라를 통해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네트워크는 언제 발명되었을까요? 첫 번째 컴퓨터 네트워크인 ARPANET의 발명, 첫 번째 이메일, DNS, IRC, AOL의 출시, 첫 번째 ISP부터 Wi-Fi의 발명까지, 지금의 인터넷을 가능하게 만든 역사적 순간들을 아래 글에서 설명하겠습니다.

1950년대 ~ 1980년대

1950년대에 미국의 국방, 연구 및 교육 기관은 정보, 리소스 및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기 위한 최초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가 같은 지역에 있는 경우에만 연결할 수 있었고 데이터 교환 기능도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ARPANET의 발명으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1980년대에 과학자들은 오늘날 인터넷의 기본 요소인 DNS, IRC, AOL과 같은 기술을 개발했고, 최초의 상업용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가 가정 인터넷 보급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르파넷(ARPANET) – 인터넷의 시작 (1969년)

냉전이 한창이던 1969년,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은 컴퓨터가 먼 거리에서 서로 통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ARPANET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ARPANET은 패킷 스위칭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킹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컴퓨터는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 데이터 패키지인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었습니다.

ARPANET은 UCLA와 스탠포드 연구소의 컴퓨터를 캘리포니아 주 전역에 연결했습니다. 이후에는 산타바바라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유타 대학교도 이 네트워크에 포함되었습니다. 70년대 ARPANET은 더 많은 대학, 연구 센터 및 정부 기관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으며, 1980년대에 ARPANET은 임무를 완수하고 난 후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인터넷의 시작

인구 전체의 98%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명실상부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 우리나라에는 언제 인터넷이 들어오게 된 것일까요? 국내 최초의 인터넷 연결은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신) 컴퓨터개발실에서 이뤄졌습니다. 미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연결된 인터넷이었지요.

연구팀은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KAIST 명예교수) 주도 하에 컴퓨터 화면을 주시했고, 서울대 연구실에서 보낸 글자 ‘SNU’가 모니터에 뜨자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다고 합니다. 당시 인터넷 연결은 텔넷(Telnet) 전용선을 이용해 1200bps 급(초당 1200개 신호가 전송된다는 의미)으로 연결됐습니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느린 속도였지만, 당시의 인터넷 연결은 1969년 미국이 인터넷을 개발한 후 세계 두 번째로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이는 일본보다 2년 앞섰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 사례기도 합니다.

이후 1988년에는 천리안 PC통신 서비스가 등장했고, 1994년 6월에는 한국통신이 코넷(KORNET)을 선보이면서 일반인들도 인터넷을 쓰는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지요. 당시 월드와이드웹(WWW)을 기반으로 인터넷이 빠르게 대중화됐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1998년 6월에 이미 가입자가 100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이메일 (1971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1969년에 최초로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메시지를 전송하는 일에 성공했지만, 아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메일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조직 내에서 한 기기에서 다른 기기로 메시지를 전송하기 위한 더 복잡한 프로토콜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지가 어디로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을까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요. ARPANET에서 일하던 미국인 프로그래머 레이 톰린슨(Raymond Samuel Tomlinson)이 1971년 사용자 이름과 대상 컴퓨터를 ‘@’로 구분하여 ‘사용자 이름@컴퓨터 이름’이라는 메시지로 표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도 이메일 주소는 골뱅이 기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획기적인 연락 방법의 유용성을 본 프로그래머들은 이제 내부 네트워크 외부의 컴퓨터로 이메일을 보내는 아이디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대중에게 확장되면서 이메일은 전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1990년대에 개인에게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가 등장하면서 이메일이 연락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채택되기 시작했습니다. 웹 기반 이메일 서비스(Hotmail 및 Yahoo 메일)의 등장은 이메일의 인기에 기여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이메일은 이미 전화번호처럼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되었습니다.

ARPANET, TCP/IP로 전환 (1983년~1985년)

1983년까지 ARPANET 컴퓨터는 서로 통신하기 위해 NCP(네트워크 제어 프로토콜)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NCP에는 한계가 있었고 서로 다른 유형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TCP/IP(전송 제어 프로토콜/인터넷 프로토콜)를 만들었습니다. TCP/IP는 더 유연하고 서로 다른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어 더 나은 통신이 가능했습니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업데이트해야 했기 때문에 NCP에서 TCP/IP로의 전환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프로토콜 게이트웨이라는 특수 변환기가 만들어져 여전히 NCP를 사용하는 컴퓨터가 이미 TCP/IP를 사용하는 컴퓨터와 통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DNS의 등장 (1985년)

DNS(도메인 이름 시스템)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IP 주소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IP 주소 또는 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는 인터넷을 통해 통신하는 각 컴퓨터를 식별하는 고유한 문자 문자열입니다. 기기의 전화번호와 같은 개념입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네트워크 호스트(네트워크상의 다른 컴퓨터 및 장치와 통신하는 컴퓨터 및 기타 장치)를 192.0.2.1과 같은 숫자 IP 주소를 사용하여 식별하고 액세스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각각의 IP 주소를 기억하고 관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DNS입니다.

DNS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도메인 이름을 숫자로 된 IP 주소로 변환하기 위해 198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복잡한 숫자 문자열 대신 google.com이나 facebook.com과 같은 도메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DNS는 인터넷 주소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AOL 출시 (1985년)

AOL(구 아메리카 온라인)은 1985년에 출범하여 1991년에 AOL로 브랜드를 변경했습니다. 소비자 인터넷의 문을 연 온라인 서비스 제공업체였습니다. AOL은 접근하기 쉬운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여 수백만 명의 사용자에게 처음으로 인터넷을 소개했습니다.

이전에는 대부분 기업, 교육 및 정부 기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했습니다. 1990년대에 AOL은 가정에서 전화선을 사용하여 연결할 수 있는 전화 접속 인터넷 액세스를 제공함으로써 인터넷을 널리 보급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채팅방이 번성하여 온라인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과 연결감을 촉진했습니다. 인터넷은 오늘날과 같은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다이렉트 메시징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면 지금처럼 편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이렉트 메시징을 위한 IRC (1988년)

이메일이 증가함에 따라 실시간 메시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IRC(인터넷 릴레이 채팅)가 이를 충족시켰습니다. IRC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서로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이자 텍스트 기반 채팅 시스템입니다.

1988년 핀란드의 컴퓨터 과학자인 야르코 오이카리넨(Jarkko Oikarinen)은 토론 포럼에서 그룹 커뮤니케이션, 비공개 메시지, 데이터 전송,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용자 간의 파일 공유를 위한 프로토콜인 IRC를 만들었습니다. IRC는 사용자가 그룹 토론에 참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채널 또는 가상 대화방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의 시작 (1989년)

웹(또는 월드와이드웹, WWW)과 인터넷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웹이란 상호 연결된 하이퍼텍스트 문서, 미디어 및 리소스로 구성된 시스템이며, 인터넷은 HTTP 및 HTML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여 이러한 웹 시스템에 접근하는 데 사용하는 상호 연결된 컴퓨터의 글로벌 네트워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웹의 기반을 닦은 기술은 누가 개발했을까요?

1989년,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여러 CERN의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를 탐색하고 연결하기 위해 네트워크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월드와이드웹의 주요 구성 요소와 설계 원칙을 개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 웹에서 리소스를 식별하기 위한 표준화된 방법을 제공하는 URI(Uniform Resource Identifier).
  •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한 하이퍼텍스트 전송 프로토콜(HTTP).
  • 문서를 구조화하고 형식을 지정하여 텍스트, 이미지 및 링크를 표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하이퍼텍스트 마크업 언어(HTML).
  • 연결된 모든 컴퓨터에서 분산된 정보에 액세스할 수 있는 분산 시스템의 개념.

버너스 리의 접근 방식은 중앙 집중식 서버의 필요성을 없애고 웹의 성장과 확장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상호 연결되고 접근 가능한 웹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최초의 상업용 전화 접속 ISP (1989년)

어떤 상업용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가 최초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1989년에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The World’라는 업체가 가장 초기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조엘 퍼(Joel Furr)가 설립한 이 회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기업과 가정 사용자에게 인터넷에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주로 군사, 연구, 교육 기관과 기업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더 월드는 개인 사용자들에게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The World는 유료로 인터넷 연결을 제공했으며, 최초의 그래픽 웹 브라우저 중 하나인 웹 익스플로러를 비롯하여 월드 와이드 웹을 탐색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도구와 인터페이스를 제공했습니다. 더 월드는 이메일, 뉴스 그룹, 온라인 채팅, 파일 공유와 같은 서비스와 기능을 더 많은 사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인터넷의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이 ISP의 성공을 목격하면서 전 세계에 수많은 다른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1990년대 ~ 2009년

이 기간에 인터넷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발전했습니다. 20년 동안 인터넷 최초의 사진, 최초의 웹 페이지, 최초의 웹캠, 최초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Wi-Fi와 Google의 발명 등 수많은 ‘최초’가 탄생했지요. 각국 정부 또한 인터넷의 힘을 미리 알아차리고 관련 정책을 개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최초의 검색 엔진 (1990년)

1990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앨런 엠타지(Alan Emtage)가 최초의 검색 엔진인 Archie를 개발했습니다. 당시 인터넷은 사용자가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FTP 사이트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웹 페이지를 크롤링하고 색인을 생성하는 현재의 검색 엔진과 달리 Archie는 FTP(파일 전송 프로토콜) 사이트에서 파일 색인을 생성했습니다. Archie는 주기적으로 FTP 서버를 스캔하여 파일 이름과 메타데이터의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사용자는 이름이나 키워드로 특정 파일을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Archie는 웹 페이지 내의 콘텐츠는 검색할 수 없었고 특정 파일 형식만 색인했습니다. 최초의 검색 엔진은 이후 웹 크롤러(1994), 라이코스(1994), 알타 비스타(1995), 그리고 결국 구글(1998)과 같은 획기적인 검색 엔진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첫 번째 웹페이지 (1991년)

1991년, 월드 와이드 웹의 발명가인 팀 버너스 리는 최초의 웹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일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획기적인 발명이었지요. 최초의 웹 페이지는 WWW 프로젝트의 개요,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설명, 그리고 웹 페이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사용자들이 텍스트와 이미지를 클릭함으로써 웹 페이지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하이퍼링크를 소개했습니다. 최초의 웹 페이지 URL은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입니다. 오늘날에도 접속할 수 있으니 클릭해보세요!

최초의 웹캠 (1991년)

최초의 웹캠이 커피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91년, Quentin Stafford-Fraser와 Paul Jardetzky가 이끄는 연구원 팀은 캠브리지 대학의 컴퓨터 실험실에 연구원들이 커피방으로 헛걸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커피포트가 가득 차 있는지 아닌지를 볼 수 있도록 커피포트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웹캠을 설치했습니다. 그래서 ‘커피포트 캠’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지요. 이 웹캠은 사용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웹 페이지에 업로드된 이미지를 봄으로써 커피포트의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비록 128×128 픽셀의 해상도를 가진 흑백 이미지였지만요.

인터넷에 업로드된 첫 번째 사진 (1992년)

아무도 어느 것이 인터넷에 진정으로 첫 번째로 등록된 사진이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992년에, 팀 버너스 리는 수년 동안 최초의 것으로 여겨지는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그것은 Les Horribles Cernettes, 혹은 끔찍한 CERN Girls라고 불리는 패러디 음악 그룹 멤버인 네 명의 여성의 장난스러운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그 당시에 이미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기본 GIF (그래픽 인터체인지 포맷) 형식이었습니다.

전 세계 정부 참여 (1993년)

1990년대 초,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정부도 이에 동참했습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인터넷 및 관련 정책 결정에 대한 정부 참여 확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국제 기구들도 또한 가입했습니다. 1992년, 유엔은 정보화 시대를 위한 정책을 논의하고 형성하기 위해 정부, 국제 기구,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모인 정보화 사회에 관한 세계 정상 회의를 조직했습니다. 같은 해, 국제 비영리 기구인 인터넷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유럽 연합,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그리고 국제 전기 통신 연합을 포함한 지역적이고 국제적인 기구들도 인터넷 관련 정책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가 시작된 시기는 각국 정부가 인터넷의 기술적 기반을 넘어 인터넷의 영향을 인식하고 보다 포괄적인 접근과 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시기로, 인터넷의 성장과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거버넌스, 규제, 국제협력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안전한 전자상거래 거래 (1994년)

1994년 최초의 안전한 온라인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전자상거래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필 브랜든버거라는 남성이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웹 브라우저를 사용하여 다니엘 콘이 설립한 온라인 소매업체 넷마켓 웹사이트에서 CD를 구매한 것입니다. CD는 Sting의 앨범 “Ten Summoner’s Tales”였으며, 가격은 12.48달러에 배송비 4.95달러를 더한 금액이었습니다.

이 혁신적인 전자상거래는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한 보안 소켓 계층(SSL)이라는 보안 프로토콜을 사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SSL은 신용 카드 정보를 암호화하고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안전한 데이터 전송을 보장하여 온라인 거래에 필요한 수준의 보안과 신뢰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1995년에는 Amazon과 eBay 등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온라인 판매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1996년)

Six Degrees는 최초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앤드류 와인라익(Andrew Weinreich)에 의해 1996년에 설립된 이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는 사용자 정의 가능한 프로필, 친구 목록, 학교 제휴, 메시징과 같은 인기 있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다른 사용자의 프로필을 탐색하고 그룹 및 포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Six Degrees는 이후 2004년에 출시되는 Facebook과 같은 현대 소셜 네트워크에 비해 사용자 수가 100만 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프로필에 있는 개인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실시간 채팅이나 비디오 통화 기능이 없었으며 사진이나 비디오를 업로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Six Degrees는 Wi-Fi 연결 없이는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는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와이파이의 발명 (1997년)

Wi-Fi는 장치가 케이블 없이 LAN(로컬 영역 네트워크)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어 무선으로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1997년에 Vic Hayes가 이끄는 NCR Corporation의 엔지니어와 연구원 팀이 최초의 무선 LAN(WLAN) 표준인 IEEE 802.11을 개발했습니다. 이 표준은 현재 Wi-Fi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IEEE 802.11은 여러 버전이 배포되었는데, 각각 이전보다 개선되었으며, 199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Wi-Fi Alliance는 IEEE 802.11 규격을 준수하는 기기를 홍보하고 인증하여 다양한 제조사의 제품 간 상호운용성을 보장함으로써 일반인에게 Wi-Fi를 제공하였으며, 기술명칭 IEEE 802.11이 소비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Wi-Fi Alliance의 마케팅 컨설턴트들이 사용하는 ‘Wiquality’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Hello Google! 구글의 등장 (1998년)

1998년에 스탠포드 대학의 학생인 래리 페이지(Lawrence Edward “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Mikhailovich Brin)이 구글 검색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학생으로서 웹상의 방대한 양의 정보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협력했습니다. 그들은 페이지 간의 링크를 분석함으로써 웹 페이지를 그들의 관련성과 중요성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알고리즘인 페이지 랭크라고 불리는 개념을 개발했습니다. 이 접근법은 그들이 다른 검색 엔진들과 비교하여 더 관련된 검색 결과를 더 잘 식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97년 페이지와 브린은 웹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나타내기 위해 숫자 1 뒤에 100개의 0이 붙는 ‘구골’을 뜻하는 단어를 언급하며 도메인 이름 google.com 을 등록했습니다. 1년 후, 그들은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에 구글이라는 개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구글은 계속 확장하여 구글 애드워즈, 구글 이미지, 구글 맵, 지메일, 구글 독스, 구글 드라이브 등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현재 구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검색 엔진으로 발명가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었습니다.

2000년 ~ 2009년

2000년대는 최초의 소셜 네트워크와 사용자-드라이버 콘텐츠 제작의 시대였습니다. 인터넷은 사회뿐만 아니라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었고, 결국 2000년대 초에 닷컴 버블이 붕괴될 때까지 그 거품을 부풀렸습니다. 위키피디아, 마이스페이스, 디그는 탄력을 받고 광범위한 사용자들을 모았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의견을 온라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스마트폰은 인터넷을 우리의 주머니로 가져왔고 개발자들의 관심을 모바일 웹에 집중시켰습니다.

닷컴 버블의 붕괴 (2000년)

닷컴(.com) 버블은 2000년대 초에 터진 주식 시장 버블로,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소위 닷컴 회사들의 기술과 인터넷 관련 주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잠재력을 보고 자본화에 열을 올리던 벤처캐피털과 개인투자자들이 하이업 인터넷 산업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닷컴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했지만,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지속가능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이익을 내지 못해 증시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의 원인으로는 과대평가가 꼽혔고, 대부분의 닷컴 기업들의 주가는 현재의 현실이나 재무 실적보다는 미래의 기대에 따라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었고, 투자자들은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고, 자금이 고갈되어 일자리 감소와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졌고, 결국 인터넷 기업들은 회복되어 사업 펀더멘털로 돌아갔고, 보다 측정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했습니다.

위키백과의 시작 (2001년)

가장 널리 사용되는 온라인 백과사전 중 하나인 위키피디아는 전문가가 작성한 기사를 호스팅하는 초기 웹 기반 백과사전 프로젝트 누피디아의 저자인 지미 웨일스(Jimmy Donal Wales)와 래리 생어(Lawrence Sanger)에 의해 200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더 빠르고 광범위한 콘텐츠 생성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를 원한 그들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공동체 중심의 웹사이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사용자들이 간단한 텍스트 코딩 시스템을 사용하여 내용을 추가, 편집, 수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기사를 편집하거나 작성함으로써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편집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인용하고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권장합니다.

위키백과가 시작된 직후, 개인들이 자원봉사를 시작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일반적인 정보와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위키백과는 300개 이상의 언어로 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수백만 개의 기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지식의 보고 중 하나입니다.

마이스페이스의 폭발적 인기 (2003년)

MySpace는 2003년 톰 앤더슨(Tom Anderson)과 크리스 드울프(Chris DeWolfe)에 의해 시작된 선구적인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입니다. MySpace 사용자들은 개인화된 프로필을 만들고, 친구들과 연결하고, 사진과 음악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구별되는 MySpace 기능은 HTML과 CSS 코딩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그들의 프로필을 사용자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사용자들은 독특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온라인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프로필 페이지가 우리의 현재 소셜 네트워크보다 훨씬 덜 능률적이고 일부는 실제로 꽤 지저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MySpace는 또한 음악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독립적이고 떠오르는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공유하고 노출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여 전성기에 매일 10,000곡 이상의 노래가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MySpace 덕분에, 다가오는 많은 음악가들은 음악 애호가들과 업계 전문가들의 더 넓은 청중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마이스페이스의 눈부신 성장은 2006년에 정점을 찍으며 구글을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에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를 추월하면서 사용자 기반을 유지하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터넷 역사에서 마이스페이스는 친구들과 연결하고, 온라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개념을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에도 수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싸이월드도 있다!

이즈음 미국에서 마이스페이스가 유명했다면, 한국에서는 싸이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도토리를 구매해 미니 홈피와 아바타를 꾸미고, 일촌맺기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했지요.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기분을 나타내고 하두리 웹캠으로 찍은 셀카 사진 하나쯤은 모두의 싸이월드 홈피에 올라와 있던 시절입니다.

Digg라고 들어보셨나요? (2004년)

디그(Digg)는 뉴스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소셜 뉴스 수집 웹사이트였습니다. 2004년 설립자인 케본 로즈(Kevon Rose), 오웬 번(Owen Byrne), 론 고로데츠키(Ron Gorodetzky) 및 제이 아델슨(Jay Adelson)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뉴스 기사, 블로그 게시물, 이미지 및 비디오에 대한 링크를 제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콘텐츠 발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했습니다. 커뮤니티 전체가 투표를 통해 가장 인기 있는 뉴스 조각을 웹사이트의 1면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의 전신이었던 셈이지요. Digg는 2008년에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웹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Digg가 소개한 투표 시스템은 당시 새로운 개념으로, 사용자가 컨텐츠 가시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소규모 출판사들에게 컨텐츠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YouTube, 선수 입장! (2005년)

이제 인터넷 사용자 거의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유튜브는 당시 PayPal에서 일하고 있던 자베드 카림(Jawed Karim), 채드 헐리(Chad Hurley), 스티브 천(Steve Chen)이 모여 2005년 2월 14일 개설하였습니다. YouTube가 처음에는 데이팅 웹사이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05년 4월에 Me at the Zoo라는 영상이 게시되고 동영상 플랫폼으로 변모하게 되었지요. 5월이 되어서야 베타판이 공개되었고 11월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동영상 플랫폼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본 구글이 2006년 11월에 16억 5000만 달러를 주고 인수하였으며 현재까지 구글의 자회사로 남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이폰과 모바일 웹 (2007년)

2007년에 출시된 아이폰은 휴대폰 산업과 모바일 웹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이폰은 사용자 친화적인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를 도입하여 즉시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을 대중화하고 경쟁사들이 유사한 기기를 개발하도록 장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는 불과 1년 후에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iPhone은 또한 모바일 장치에서 인터넷에 액세스하고 검색할 수 있는 강력한 웹 브라우저 Safari를 도입하여 제한적이고 번거로운 브라우징 환경을 데스크톱과 같은 환경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로 인해 웹 개발자들은 응답성이 뛰어난 디자인과 모바일 최적화에 집중하여 사용자가 다양한 화면 크기의 모바일 장치에서 웹 사이트에 액세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HTML, CSS3 및 JavaScript와 같은 모바일 웹 기술은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훨씬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더욱 정교하고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되었습니다.

Apple의 App Store도 iPhone과 함께 등장하여 타사 앱 개발자들이 iPhone용 앱을 만들고 배포할 수 있게 되어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본적으로 Apple은 개발자들이 앱을 제시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도입하여 모바일 우선 앱 개발 방식을 장려했습니다.

비트코인의 시작 (2009년)

2008년, 최초의 탈중앙화된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또는 프로그래머 그룹)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으며, 그는 비트코인의 개념과 기술적 틀을 설명하는 백서를 출판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1월에 ‘제네시스 블록’으로 알려진 첫 번째 블록의 채굴과 함께 비트코인이 기능하는 암호화폐로서의 시작이 일어났습니다.

비트코인은 금융기관이나 정부 등 중앙집권 당국의 통제 밖에서 활동하는 암호화폐로, 블록체인이라는 분산원장을 도입해 비트코인과의 모든 거래를 기록하고 소유권과 이력을 기록해 이중 지출 이슈를 없앴으며, 네트워크 참여자 검증 메커니즘을 활용해 코인 2100만개를 제한적으로 공급하고 모든 거래를 가명화해 부정거래를 방지했습니다.

비트코인의 성공은 금융 및 기술 환경을 변화시키고 수백 개의 대체 암호화폐 개발에 영감을 주었으며, 나아가 다른 산업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더 폭넓게 채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ICANN 정책 변경 사항 (2009년)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 and Numbers)은 인터넷의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IP 주소 할당, 프로토콜 파라미터 할당 등을 조정하여 인터넷의 안정적이고 안전하며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인터넷을 유지하는 비영리 단체로, 1998년 설립되어 다자간 이해관계자 거버넌스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전 세계인들의 협력체입니다.

2009년 ICANN은 도메인 이름 등록과 인터넷 일반 관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정책 변경을 시행했습니다:

  • 도메인 이름 옵션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높여 맞춤형 도메인 확장이 가능한 새로운 일반 최상위 도메인(gTLD)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 국제화 도메인 이름을 위한 패스트트랙 프로세스(IDN)는 라틴어가 아닌 문자를 포함하는 도메인 이름의 도입을 가능하게 하여 인터넷에서 더 큰 언어적 다양성과 포괄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도메인 이름 등록 시스템 내에서 소비자 보호, 보안, 투명성 및 책임을 강화한 RAA(Registrar Accreditation Agreement)의 개정판입니다.
  • 향상된 WHOIS(도메인 이름 등록자에 대한 정보가 있는 공개적으로 액세스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정확도 요구 사항을 통해 도메인 이름 남용, 스팸 및 지적 재산권 침해를 해결했습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로 인해 도메인 이름 등록 프로세스가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 상의 언어적 포함과 다양성에 기여했으며, 인터넷 사용자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2010년 ~ 2019년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번창하고 사용자 기반이 확대되고, 스마트 기술이 발전하고, 전자상거래가 부분적으로 일반 쇼핑을 대체하면서, 이 시대는 인플루언서 문화, 스트리밍 서비스, 바이럴 트렌드, 모바일 게임, AI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의 트렌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인기를 얻었고 기능을 확장했습니다:

  • 페이스북(Facebook)은 소셜 미디어 환경을 장악하고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했습니다. 이제는 기업명을 메타(Meta)로 변경하였지요.
  • 마이크로블로그 플랫폼 트위터(Twitter)는 280자의 ‘트윗’으로 업데이트, 뉴스, 토론으로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참여시켰습니다.
  •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인플루언서, 연예인, 브랜드 및 개인을 위한 선도적인 사진 및 비디오 공유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 스냅챗은 사라지는 사진과 비디오 메시지와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이 기능은 나중에 틱톡(TikTok)과 같은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채택되었습니다.
  • Pinterest는 사용자의 관심사와 관련된 이미지를 공유함으로써 시각적 발견을 위한 선도적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LinkedIn은 전문가, 헤드헌터 및 구직자를 위한 가장 인기 있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스마트 기술

스마트폰의 확산은 모바일 인터넷의 확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와 같은 앱스토어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앱은 소셜 네트워킹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일부 모바일 게임은 입소문이 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애니팡, 캔디 크러쉬 사가, 앵그리 버드, 포켓몬 고 등).

인터넷 뱅킹 및 전자 상거래

전자 상거래도 번성하여 아마존, 이베이, 알리바바와 같은 플랫폼이 사용과 수익을 증가시켰습니다. 온라인 쇼핑 뿐만이 아닙니다. 각 은행에서는 업무를 인터넷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 금융 활동의 장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는 작업을 활발히 시행했습니다. 카카오뱅크나 레볼룻(Revolut)과 같이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은행도 생겨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발전과 함께 금전적 이익을 노리는 피싱이나 바이러스 해킹 등의 사례 또한 증가하여 개인 인터넷 사용자가 사이버 범죄에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훌루,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와 같은 구독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는 전통적인 텔레비전 산업을 뛰어넘는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Netflix의 경우, 미국에서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한 사업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된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튜브는 다른 사용자 생성 콘텐츠 플랫폼 중에서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라이브 스트림과 콘텐츠 제작자가 광고, 시청자 멤버십, 상품, 후원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파트너 프로그램을 도입하였으며, 다양한 채널과 소셜 네트워크에서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유튜버 또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직업이 되었으며, 기업들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되었습니다.

판데믹 기간과 오늘날의 인터넷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사이버 기술과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2019년 말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하여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봉쇄가 이루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원격근무 제도 도입에 따라 우리의 사회생활이 온라인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원격 근무 및 e-러닝

판데믹이 유행하는 동안 사람들은 온라인 도구를 사용하여 집에서 일하고, 배우고, 소통하고, 오락을 즐겼습니다. 사무실에서 하던 업무는 Zoom, Microsoft Teams, Google Meet와 같은 원격 근무 플랫폼으로 이동했습니다. 교육 기관은 교육을 위해 Google Classroom 또는 Microsoft Teams와 같은 원거리 학습 플랫폼으로 이동했습니다. 가상 강의실과 웹 세미나가 표준이 되었습니다.

취미 및 여가 활동의 장

밖에서 하는 활동이 줄어드는 대신 사람들은 취미를 온라인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또한 온라인 활동에 더 집중했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엄청난 시청률 증가를 기록했지요. 온라인 게임 사업은 번창했고 VR과 메타버스 사업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사회적 고립으로 빚어진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가족과 계속 연결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향했습니다.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과 VPN

인터넷 속도의 증가와 5G 사용으로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국경의 의미가 사라졌고 자유로운 지식의 확장이 가능해졌지요.

인터넷에 대한 의존과 이에 따른 사이버 범죄의 증가로 인해 사이버 보안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 백신과 악성 소프트웨어 방지, 해킹 공격 탐지 및 방지 시스템, 다중 요소 인증 및 가상사설망(VPN)과 같은 기술은 이제 일상의 인터넷 사용자에게 필수품이 되었지요.

인터넷의 미래

인간의 역사 이래로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은 기기에 연결하고 있는 현대의 인류는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 자동차, 스마트 가전, 스마트 도시 및 4차 산업을 누리고 있습니다. 스마트 기기 사용의 증가는 더 나은 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 솔루션을 필요로할 것입니다. 또한 엔터테인먼트와 작업 과정 또한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 기술을 통해 우리가 일하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온라인에서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바뀔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이미 우리 곁에 현실로 다가온 인공지능 기술과 빅데이터가 어떤 인터넷의 미래를 펼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렇게 급속한 변화의 물결 가운데 정부의 법적 제도 및 개인 정보 보안을 위한 제반 시설이 재빨리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례로 챗GPT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지 않는 것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으며 몇몇 국가에서는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지요. 일상의 개인 정보 보호는 인터넷 사용자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의 역사를 돌아봤습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이 글에 소개된 많은 사람들처럼, 여러분도 VPN 사용의 중요성을 빨리 깨달아 인터넷 생활의 주도권을 잡는 현명한 네티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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